이번 주 보표레터의 이야기들
#43
보표레터 43호입니다.
안녕하세요, 보표레터 구독자님들!
오늘은 잊고 있던 장소에 다시 갔을 때 떠오르는 추억들에 대한 회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삶에서 기억하는 장소들이 다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다녔던 초등학교라든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자주 갔던 분식집이라든지 이런 추억의 장소 말이죠. 제게는 뉴욕의 브루클린이 그런 장소입니다. 이곳에 일 때문에 많이 방문했고 뉴욕 초창기 터프한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들른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그때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와 많이 달라진 삶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독서 인사이트에서도 연결되는 주제라서 함께 읽어보시기에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모든 글은 보표레터 메인 페이지에도 보관되어 업로드 되기 때문에 추후 읽으시기 편하실 것입니다.
아래 인사이트 리스트 확인해주시고 천천히 읽어주세요. 글이 길다 싶으면 본문들을 북마크 하시고 추후에 다시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다시 한번 구독해주셔서 감사드리며, 그럼 시작합니다!
이번주 인사이트 리스트!
- 자기계발 칼럼: 내 삶은 언제나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어려웠다. 비울 때 우리가 비로소 얻는 것들
- 독서 인사이트: 자기 확신이 필요한 당신에게 '에머슨의 자기 확신에 관하여' 45 문장 발췌 노트 공유 (랄프 왈도 에머슨)
- 영상 인사이트: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가진 것만큼 좋다 (나발 라비칸트, Naval Ravikant)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신물이 날 만큼 힘든 기억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있으신가요? 제게는 몇몇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홍대와 합정역이 그런 장소입니다. 대학 시절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시절의 힘든 기억들이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을 키우는 그 시간은 제게 소중했지만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고 해도 힘든 것은 힘든 채로 그냥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백하게 말이죠.

뉴욕에서는 브루클린이 그렇습니다.
브루클린은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힙하다?'라며 윌리엄스버그라든지 이런 멋진 곳이 거론되지만, 아무래도 제게는 이런 지역보다는 조금 더 위험한 지역에서 일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절의 기억들은 제게 힘든 기억입니다. 역시 담백하게 그저 힘든 기억으로 묻어 두었습니다.
"그곳을 떠날 때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라며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아갈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와는 전혀 다른 바뀐 당당한 저의 모습으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힘든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위험한 지역에 가야될 이유도 없었습니다. 비록 십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저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역시나... 그 때도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찾은 저만의 대답은...
내가 좋아서하는것과 누군가 시켜서 하는것, 즉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것을 위해 달리는것과 타인의 트랙위에 달리는것의 차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트랙위를 열심히 달려서 도착한 장소에 저만의 유토피아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차선변경을 하여 제 트랙위를 달렸고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번 브루클린 방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은 브루클린은 아름다운 거리였고, 그 시절과 다른 느낌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 다시 쓰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신가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고 있나요? 아니면 타인의 트랙위를 달리고 있나요? 오늘 독서 인사이트와 영상 인사이트는 모두 이것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독서 인사이트 시작합니다.

자기 확신이 필요한 당신에게 '에머슨의 자기 확신에 관하여' 45 문장 발췌 노트 공유 (랄프 왈도 에머슨)
여러분은 자기 확신을 갖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 확신이란 누가 뭐래도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서는 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요즘 사람들이 자기 확신을 갖는 것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으며, 후킹 기술이 판치는 콘텐츠들 속에서 때때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 길인가?", "다른 사람의 길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마치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바보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트랙에서 달린 종착역에 나를 위한 유토피아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삶의 경험에서 이미 여러분은 아실거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다를거야라며 달려보기도 합니다. 타인의 트랙위를 말이죠. 이런 상황이시라면 이번 책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나를 온전히 나의 트랙위로 돌려주는 책 '에머슨의 자기 확신에 관하여'를 읽으며 제가 감명 깊은 45 문장 발췌한것을 공유합니다.
여러분에게 자기 확신에 대하여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 "그 누구도 모방하지 마라. 당신 자신으로 사는 것이 곧 위대함이다!"
- "타인의 그림자에 살지 마라. 당신 스스로가 빛이 되어라."
- "자기 자신을 밖에서 찾지 말라."세네카
- 질투는 무지이며, 모방은 자살과 같고, 어쨌든 자기에게 주어진 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배움, 드넓은 우주에 온갖 좋은 것들이 가득 차 있을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일구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결국 영양가 있는 알곡을 얻게 된다는 배움이다. 우리 안에 깃든 힘은 사실상 새로운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지만, 시도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모른다.
- 당신이 자신의 일을 한다면, 나는 당신의 참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일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강해질 것이다. 인간은 이 순응의 게임이 마치 눈을 가리고 하는 술래잡기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당신의 위치를 안다면, 당신이 어떤 주장을 할지도 예상할 수 있다.
- 자신만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라.
- 내가 오늘 옳은 일을 하며 세간의 시선을 무시할 수 있는 굳건한 신념을 지녔다면, 지금의 나를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이전에 옳은 일을 해온 것이 틀림없으리라.언제나 겉모습을 경멸하라. 그러면 그것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성격의 특성은 서서히 축적된다. 과거에 행한 덕이 현재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무엇이 의회와 전쟁터에서 영웅들의 위대함을 만들어내고 그토록 상상력을 가득 채우는가? 우리는 그 뒤에 줄줄이 이어지는 위대한 승리의 날들이 있었음을 안다. 그것들이 하나의 빛이 되어 전진하는 영웅을 비춘다. 그는 마치 천사들이 호위하는 듯한 자태를 드러낸다. 그것이 바로 채텀의 목소리에 천둥소리를, 워싱턴 자세에 위엄을, 애덤스의 눈에 미국을 깃들게 하는 것이다.명예는 덧없이 사라지지 않기에 고색창연한 유물이 된다. 그것이 영원한 고대의 미덕이다.
- 인간은 세상에서 일종의 술주정뱅이로 살아가지만, 때때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고귀한 존재임을 깨닫는다는 진실 말이다.우리의 독서는 구걸하고 아첨하는 행위와 같다. 역사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를 기만한다. 왕국과 영토, 권력과 재산은 작은 집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평민, 존과 에드워드와 비교하면 겉만 번지르르한 단어에 불과하다. 모두의 삶은 같다. 결국 삶 전체를 비교하면 동등하다. 알프레드, 스칸데르베르, 구스타부스와 같은 인물들을 그토록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도덕적이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해도 그들이 그 덕성을 모두 발휘했는가? 오늘날 당신의 개인적인 행위도 그들의 공적이고 유명한 발걸음만큼 위대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고유의 시각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왕의 명예가 그들에게 옮겨갈 것이다.
- 진실하게 살면 진실을 볼 것이다.
- 내 안의 거대한 자아가 어딜 가든 함께하기 때문이다.
- 자기 자신을 고수하라. 절대 모방하지 말라. 당신의 재능은 인생을 살면서 쌓은 힘을 통해 매 순간 발휘될 수 있다. 타인을 따라 한다면 임시변통한 반쪽짜리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각자가 가장 잘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인간의 창조자만이 가르쳐줄 수 있다.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당사자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셰익스피어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어디 있었을까? 프랭클린, 워싱턴, 베이컨, 뉴턴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있었을까? 모든 위대한 사람은 고유한 존재이다.
- 셰익스피어는 결코 셰익스피어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당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라. 그러면 그 무엇도 당신에게 지나친 바람과 도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는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피디아스의 거대한 끌이나 이집트인의 흙손, 혹은 모세나 단테의 펜처럼 대담하고 위대하지만 이 모든 것과는 다른, 자신만의 표현 도구가 있다.
-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있다.
- 모든 과잉은 결핍을 초래하며, 모든 결핍은 과잉을 초래한다.
- 우리는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해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 원인과 결과, 수단과 목적, 씨앗과 열매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결과는 이미 원인 속에서 피어나고, 목적은 수단 안에 먼저 존재하며, 열매는 씨앗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신이 만든 모든 것에는 틈이 존재한다.삶은 스스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부여하는데, 어리석은 자들은 그것을 피하려고 애쓴다.
- 타인이 들어가지 못하게 천국의 문을 닫으려고 애쓴다면 자신이 들어갈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 대접하는 만큼 대접받을 것이다.모든 것은 쌍으로서 서로 대립하여 존재한다.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에는 피, 평가에는 평가가, 사랑에는 사랑이 맞대응한다. 베풀면 돌려받을 것이다. 물을 뿌리면 물을 맞게 된다.
- 손에 지나치게 좋은 것을 쥐고 있다면 조심하라. 그것은 금세 부패하여 벌레가 꼬일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빨리 대가를 지불하라.
- 이미 말한 것은 주워 담을 수 없고, 남긴 발자국은 지울 수 없으며, 한번 놓은 사다리는 치울 수 없다. 파멸적 상황은 언제나 밖으로 나타난다. 물과 눈, 바람, 중력과 같은 자연의 법칙과 물질은 도둑에게 형벌이 된다.반면에, 그 법칙은 모든 올바른 행동에도 똑같이 확실하게 적용된다. 사랑하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다.
- 선한 사람들은 약점과 결점조차 친구로 삼는다. 자랑도 해가 될 때가 있듯이 결점도 유용할 때가 있다. 우화에 등장하는 수사슴은 자신의 뿔을 자랑스러워하고 발에 대해 불평했다. 하지만 사냥꾼이 나타났을 때 그를 구한 것은 발이었으며, 이후 덤불에 걸려 그를 죽게 만든 것은 뿔이었다.모든 인간은 살면서 자신의 결점에 고마워해야 한다. 누구도 어떤 진리에 맞서 싸우기 전까지는 그 진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장애물로 인해 고통을 겪고 부족함을 넘어서는 재능의 승리를 보기 전까지는 그 장애물이나 재능에 대해 완벽히 알 수 없다.
- 일반적으로 모든 악은 우리가 굴복하지 않는 한 은인이 된다.
- 성 베르나르의 지혜를 배운다. "나 자신 외에는 무엇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내가 겪는 해악은 내게서 비롯된 것이며, 잘못한 일이 없다면 진정한 피해자가 되지 않으리라."
누군가의 정의가 다른 이에게는 불의가 되고, 누군가의 아름다움이 다른 이에게는 추함으로 보이며, 누군가의 지혜가 다른 이에게 어리석음이 될 수 있다. 이는 어떤 이는 같은 대상을 더 높은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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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본인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을 살아갈수록 어떠한 것이든 100% 완벽함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어렵게 배우지 않고 자연을 봐도 알 수 있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영원히 피어 있을 수 없습니다. 바위는 단단하지만 영원히 깨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도 언젠가 멈추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어둠도 언젠가는 끝나며 해가 뜹니다. 이렇듯 자연에서도 완벽함이란 찾아보기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의라고 외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의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 노숙자에게 100달러를 주는 선의를 베풀어도 누군가는 그 행동을 잘했다고 칭찬할 것이며 누군가는 질책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해가 되시죠? 삶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100% 진리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수용할 줄 알며 겸손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만의 아집에 갇혀 있으면 다른 의견을 담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담을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담고 어둠도 빛을 담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넓은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며, 겸손한 자세로 나와 다른 이의 의견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리고 저도 그럴 수 있기를 오늘도 바라봅니다.